웹을 열며.

from 2012.02.10 02:10

1.

   기분전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헤어 스타일을 바꿔본다든가, 평소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물건을 구입하는 등 말이다. 나는 환경을 바꾸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동안 늘 생각하고 있었던 '작업 및 공부, 그리고 게시 및 공개 환경의 변화'를 행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며칠 간 먼저 나의 메모와 스크랩, 그리고 다이어그램 자료를 정리하는 방법을 구성하였다. 에버노트, PDF Pro, Mindmanager(Mindjet), i photo folder sync등을 이용해서 '언제 어디서나 자료를 수집하고, 생각을 기록하며 구조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 만들게 된 것이 티스토리 블로그 기반의 이 웹사이트다.


   어디서도 듣기 어려운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나지만, 최근 이 년 동안 벌어진 일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특히나 지난 반 년간의 악몽 같은 상황 속에서의 책 출판 과정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는 일단락되었지만 말이다.
   요즘 내가 지내는 환경이,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 중에 가장 나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이라는 기약을 던지기엔, 이제는 나이가 들어 버렸다. 절대로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정말로 밀어붙여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나이가 어찌 숫자일 뿐일 수 있을까? '그때 해야 하만 하는 것'은 분명히 있다.) 때문에,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 더욱 큰 악수(惡手)를 두기로했다. '그 어떤 것보다 작가로서의 성취가 우선'이라는 기조를 세우고서 말이다.

   군대 기간까지 포함하여 지난 오 년간 마음먹고 작업을 행해본 적이 없다. 종종 오천택 작가와 진행한 프로젝트, 그리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Borderline 시리즈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지난 일 년간을 제외하고는 아주 집착적으로 사진을 찍었었다. 덕분에 풍경 스냅류의 사진은 셀렉트컷만 수백 장이 쌓였지만, 그것은 내게 '기술 훈련' 적 의미가 짙은 사진들이었다.
(물론 도중에 간추린 Lacked-scape 시리즈는 또 다른 가능성이었다.)
   물론 그 시간에 단지 그것만을 쌓아둔 것은 아니다. 충분치 않지만, 적지 않은 독서를 유지했고 동시대적 미술이 향하는 바를 나름의 시야에서 지속적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또한, 약 오 년간 쌓인 에스키스도 이제는 적지 않은 양이 되었다. 단지 생활고에 시달리는 시간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악조건 속에서 모아놓은 자원들을 이제는 생산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겠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이 없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보다 안정적이고 윤택한 삶을 기준으로 선택을 하다 보면, 선택의 폭이 극히 좁아지는 순간이 올 것을 안다.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이 가르쳐줬듯이.



2.

   홈페이지를 다 만들고 나서, 내가 이곳에 무엇을 게시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작업과 텍스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작업과 텍스트를 올려야 할까? 그것은 아주 민감한 문제들을 수반한다. 내가 단지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글을 쓴다면야 어떤 상관도 없겠지만, 이것이 나의 업이기에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아주 민감한 사항들이 걸려있다. 아마도, 그것은 끝끝내 적지 못할 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우선은 글에 집중할까 한다. 이 공간의 명칭을 '사적인 공간'이라 칭했듯이, 살면서 내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많은 비평과 대담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단지 욕심일 뿐일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글이라는 것에 많은 가치를 두고 산다. 아마도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이성(을 추구하려고 했던)적인 미술의 시대를 지나온 사람의 아들로서, 텍스트에 대한 집착은 당연할 수도 있겠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며 내가 아버지께 가장 많이 선물 받은 것은 책이었고, 가장 깊은 대화를 나눈 것은 편지였으며, 가장 많이 지적받은 것은 말이었다.

   어쨋거나, 작업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현대미술은 일종의 철학(일종의-라는 것이 중요하다.)이다. 철학이라는 것은 곧 사유일 것이고 그것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언어를 이루며-정리하고-기록하는 것은 결국 문자 언어다. 그렇게 현대미술의 근저에는 텍스트가 큰 구조를 이루고 있음에 닿게 된다. 그것이 이 시대의 예술학도들에게 텍스트 생산 능력이 요구되는 이유다. (물론 그 텍스트 자체에 함몰되면 곤란하다. 일종의 텍스트의 덫.)
   나는 이런 생각에 더욱 텍스트 생산에의 훈련을 더하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학습하는 데에 있어 '생산-비평-수렴-수용-재생산'이 가장 훌륭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평소 노트 혹은 디지털 기기에 입력하고 정리했던 글들을 밖으로 꺼내놓을까 한다. 누군가가 애정 어리고 신랄한 비평을 해주기를 기다리면서.



3.

   언젠가부터 지속적인 활동에의 경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엉뚱하게도 그러한 생각은 작가가 아닌 운동선수를 바라보며 시작되었다. 나는 농구를 좋아하는데 KBL보다는 NBA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NBA리그는 특성상 플레이오프 시즌에의 퍼포먼스와 수상, 특히나 우승에 큰 가치를 둔다. 하지만 승자는 하나일 수밖에 없는 법. 시대적 상황상 우승을 이루지 못한 훌륭한 선수들을 자주 봐왔다.
   대표적으로 유타 재즈라는 팀의 존스탁턴과 칼말론이라는 선수가 있다. 그들의 누적기록은 어마어마한 것으로, 특히나 존 스탁턴의 통산 스틸과 어시스트기록은 현대 농구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로 쌓아져 있다. 여기서 지속적인 활동에의 경의가 시작된다. 통산 기록이라는 것은 결국 아주 철저한 자기관리와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업을 위해서, 아주 많은 것들을 절제하며 오직 그것에 집중하는 것. 나는 그 긴 기간의 인내에 매료되어버렸다.
   그 시선은 농구에서 뻗어나와 모든 삶으로 향했다. 자신의 목적, 혹은 삶의 태도와 자세를 지키고자 오랜 시간 인내하는 것. 자신을 자제하는 것. 그것이 사람의 아주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가치를 축적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통제와 예측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규모 있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이것은 어려운 일로, 이것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절제를 요구한다. 대신 그 결과는 늘 생각보다 큰 차이를 가져온다.
   나는 대표적으로 지속해서 축적된 것의 무서움을 독서에서 찾는다. 일주일에 책을 한 권 읽는 사람이 일 년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은 52권. 생각보다 얼마 안 된다. 이주일에 한 권을 읽은 사람과 26권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하지만 10년 뒤에는 260권이다. 주변지식의 축적에 따른 텍스트의 행간에 대한 이해를 고려해보면, 실제로 얻게 되는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헤아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때 가서야 후자의 인물이 일주일에 두 권씩 읽는다고 따라잡을 수 있게 되는 차이가 아니다.

   그런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내가 나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은 경우 지속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 웹 공간도 마찬가지다. 웹을 구축하는 과정 내내 내 머릿속에는 '지속해서 유지 관리가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가득 찼다. 하지만 결국 결과는 행함에서 나오는 것. 걱정한다고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 것이다. '규모 있게, 꾸준히 행한다.' 그것이 내 나이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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